멀리 익산의 진산 용화산(321.2m) 자락에 백제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미륵사지가 있고 손에 닿을 듯 가까운 오금산에는 백제시대 왕궁과 미륵사지 등을 지키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 익산토성이 보이는데요, 백제시대 금마저로 불린 익산의 고토를 찾은 것은 오늘 미륵사지에서 시작한 백제의 시간 여행 두 번째로 백제 30대 무왕의 묘가 보기 위함입니다.
무왕릉 너머로 멀리 왕궁리 유적지가 보이고 왼쪽으로 금마면 소재지 근처에 서동생가터도 보입니다.
묘의 위치가 특별한 것은 바로 무왕이 자신의 생가터와 자신이 백제의 부흥을 위해 지은 왕궁리 유적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데요, 더 특별한 것은 선화공주의 묘로 추정되는 소릉이 무왕릉과 또 서로 마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대왕릉인 무왕릉입니다.
신라시대 왕릉에 비하면 조금 적은 편인데요, 작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개별 팸 투어를 통해 부여과 공주에 있는 능산리와 송산리 고분군에서 본 다른 왕들의 무덤과 비슷한 규모여서 백제시대 왕릉이 검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왕릉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는 소왕릉을 합해 익산 쌍릉이라고 부르는 무왕릉은 사적 제8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대왕릉은 지름 30m에 높이가 5m 정도로 위에서 보면 원형인데요, 선조대 왕들의 무덤인 부여 능산리 고분과 형식이 같은 판석재 굴식 돌방이라고 합니다.
이미 각종 역사서에는 백제 왕의 무덤이라고 기록되었지만, 그게 무왕의 것인지는 과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었는데요, 2017년 시작한 발굴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물은 조사 당시 이미 도굴돼 나무 널만 복원해 국립 중앙 박물관에 보관되었다는데요, 2017년부터 시작한 발굴조사에서 길이 21m 너비 6m 깊이 3m에 이르는 백제 고분으로는 가장 긴 묘도가 확인되었고 50~70대 중반에 키 161~170cm 정도 되는 남성의 인골 102개가 발견돼 법의학 분석으로 서기 620년에서 659년 사이에 숨진 평균 신장 이상의 남성이라는 것이 밝혀져 백제 30대 왕인 무왕의 묘일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무왕릉은 발굴조사를 마치고 다시 복원된 상태인데요, 대왕릉에서 솔숲을 따라 200m 떨어진 곳에 소왕릉이 있습니다.
익산 쌍릉은 왕릉이기도 하지만 산책로도 잘 조성되었습니다.
특히 대왕릉에서 소왕릉으로 가는 200m 소나무 숲길은 솔향기 맡으면서 가는 산책로인데요, 무왕이 살아생전 왕비가 죽은 뒤 자신의 무덤을 조성했던 것으로 알려졌기에 먼저 죽은 왕비의 무덤을 인근에 조성하고 죽어서도 늘 만나는 꿈을 꾸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왕은 젊은 시절 서동요로 신라의 공주를 얻어 귀향했지만, 지방 출신이라는 한계로 왕위에 오르기까지 험난한 세월을 견디고 견뎌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화공주는 이른바 조강지처였던 셈인데요, 왕위에 오른 뒤에도 선화공주와 미륵사지를 창건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2011년 해체보수작업을 시작한 지 18년 만인 2019년 복원된 미륵사지에서 금제 사리 봉영기가 발견되었고 사찰 창건에 등장한 왕후의 이름이 백제 귀족인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선화공주에 대한 천년 설화가 위기를 맞았습니다.
대왕릉에서 소왕릉까지 걸어가는 동안 과연 선화공주가 정말 무왕의 아내였을까? 선화공주의 미륵사지 창건설화는 사실이었을까? 더 나가서 서동요의 설화도 사실일까 많은 고민이 이어졌는데요, 정답은 조금 있다 알려드리겠습니다.
소왕릉은 지름 24m, 높이 3.5m로 대왕릉의 지름 30m, 높이 5m에 규모가 조금 작습니다.
역시 원형인데요, 전형적인 백제시대 왕족의 고분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1917년 일제강점기 발굴조사 때 이미 도굴이 이루어진 상태였지만, 부여 능산리 고분의 왕릉과 형식과 같고 여러 역사서에 무왕릉과 선화공주의 릉으로 알려졌기에 그동안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왕릉은 2017년부터 시작한 발굴조사로 백제 무왕의 묘로 밝혀졌고 소왕릉은 2019년 대왕릉에 이어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요, 석실 규모가 대왕릉보다 작아 왕비릉을 판단되었지만 피장자의 정체를 밝힐 만한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선화공주의 무덤인지 아니면 미륵사지 사리 봉영기에 쓰인 사택적덕의 딸인지 밝힐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백제시대 무왕의 왕비는 선화공주 한 사람뿐이었을까? 선화공주의 출생과 사망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선화공주가 먼저 죽었다는 설화가 있어 무왕이 선화공주를 묻고 자신의 무덤도 선화공주 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는데요, 이유는 사택적덕의 딸이 무왕보다 1년 뒤인 서기 641년 사망했고 미륵사지는 중앙 목탑을 중심으로 좌우에 석탑이 하나씩 있는 사찰로 여러 왕비가 각각 탑을 조성하고 사리 봉영기를 썼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소왕릉이 선화공주의 묘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기록에 무왕의 왕후는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명쾌해졌습니다. 무왕은 선화공주와 사별한 후 사택적덕의 딸을 왕후로 삼았고 그녀와의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 선화공주가 묻힌 소왕릉 곁에 자신의 무덤을 정했으며 사택적덕의 딸보다 1년 먼저 죽은 뒤 이곳에 안장된 것입니다.
물론, 소왕릉에 대한 견해는 전적으로 제 생각임을 밝힙니다.
주차장으로 돌아왔더니 익산 스탬프 투어 박스가 있습니다.
오늘 미륵사지로 해서 서동생가터, 그리고 무왕릉까지 여행했는데요, 하나씩 찍다 보니 2월에만 세 곳을 다녀왔네요.
익산 쌍릉을 나서면서 서동과 선화공주에 대한 설화를 계속 믿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서동설화를 그대로 간직하고픈 생각이 컸는데요, 소왕릉의 비밀이 벗겨지지 않는 한 그 생각은 계속 유효할 것이고 꿈도 그렇게 꿀 것입니다.
출처 : 익산시 블로그
